[아유경제=정윤섭 기자]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일대가 재건축을 향한 47년간의 기다림 끝에 첫 시작을 알렸다. 서울시가 아파트지구 지구단위계획구역으로 전환함에 따라 밑그림이 공개되면서 압구동 재건축사업에 가속도가 붙을 것으로 기대되는 가운데 패션ㆍ문화의 중심지인 압구정이 재건축이란 새 옷을 입을 수 있을지에 대해 업계 관계자들의 시선이 쏠렸다.
‘압구정’ 지구단위계획(안) 수정 가결… 용도ㆍ밀도ㆍ높이 규제 완화
압구정1~6구역, 용적률 300%ㆍ지상 최고 50층 내외 건립 가능
유관 업계에 따르면 최근 서울시는 ‘제14차 도시ㆍ건축공동위원회’를 열어 기존 압구정 일대 아파트지구(1~6구역)를 지구단위계획구역으로 전환하는 ‘압구정 아파트지구 지구단위계획(안)’을 수정 가결했다. 시가 발표한 계획안의 골자는 건축물의 용도ㆍ밀도ㆍ높이 규제 완화 등이다.
이에 따라 앞서 지난 7월, 신속통합기획(이하 신통기획)으로 재건축 계획이 확정된 압구정2ㆍ3ㆍ4ㆍ5구역과 함께 신통기획을 신청하지 않은 1ㆍ6구역도 용적률 최대 300%가 적용돼 지상 50층 내외 아파트로 지을 수 있게 됐다.
앞서 압구정 아파트지구 재건축은 2017년 도시ㆍ건축공동위원회에서 3차례 보류된 바 있다. 그러던 2022년 11월 개정된 ‘아파트 지구단위계획 전환지침’을 반영하고 계획을 보완하면서 6년 만에 심의 통과에 이르게 됐다.
설계비만 수백억 원에 달하는 ‘디자인 고급화’ 경쟁이 한창인 압구정 일대 아파트 단지로는 ▲미성1ㆍ2차(1구역ㆍ1233가구) ▲신현대9ㆍ11ㆍ12차(2구역ㆍ1924가구) ▲현대1~7ㆍ10ㆍ13ㆍ14차(3구역ㆍ4065가구) ▲현대8차, 한양3ㆍ4ㆍ6차(4구역ㆍ1340가구) ▲한양1ㆍ2차(5구역ㆍ1232가구) ▲한양5ㆍ7ㆍ8차(6구역ㆍ672가구) 등이 있다.
기존 아파트지구는 1970~1980년대 고도성장기에 맞춰 대규모 아파트 조성을 통한 주택난 해소를 위해 도입됐으나 하나의 용지엔 하나의 용도만 도입할 수 있는 규정 탓에 주택용지에는 주택만 지을 수 있고 단지 내 상가도 허용되지 않는 등 주상복합 개발 요구 수용이 곤란했다. 1976년부터 1987년 사이에 지어진 압구정 아파트지구 또한 이 같은 규제로 재건축사업 추진에 어려움을 겪어왔다.
이번에 지구단위계획으로 전환됨에 따라 기존 아파트지구 내 상업 기능을 담당하던 중심시설용지는 주거용도 건축이 가능해지며 개발잔여지에는 허용되지 않던 비주거용도 도입이 허용될 예정이다. 단 중심시설용지 주거용도 허용은 관련 위원회 심의를 거쳐야 하며 주거용도 허용 시 발생하는 개발이익(지가상승)을 고려해 5~10% 범위에서 공공기여가 필요하다.
한 도시공학 전문가는 “아파트지구는 과거 제도라 도시를 관리하는 수단으로는 많은 부족함이 있다”라며 “지구단위계획 전환을 통해 기부채납 및 공공임대주택에 대해 꼼꼼한 토지 관리가 가능해졌다”라고 말했다.
한편, 시는 주민 재열람 공고를 거쳐 올해 안에 압구정 아파트 지구단위계획을 최종 결정 고시한다는 방침이다.
시 관계자는 “지구단위계획 전환을 계기로 도시 및 사회 여건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하고 주변 지역과 조화로운 통합 도시관리체계가 마련됨으로써 주택 공급이 활성화할 것으로 기대한다”라고 밝혔다.
‘핫플레이스’ 압구정의 입지적 장점은
패션ㆍ문화ㆍ교통ㆍ교육ㆍ한강이 연결된 ‘대장주’
대한민국 대표적 부촌 중 하나인 압구정의 이름은 조선시대 권력가였던 한명회가 말년에 ‘갈매기와 벗한다’라는 뜻으로 한강 주변에 지은 정자 이름에서 유래됐다.
현재는 청담동, 삼성동 등과 함께 강남구 부촌으로 꼽히며 그중에서도 입지 ‘대장’으로 불린다. 이곳에 대표적인 특징은 ▲패션ㆍ문화 ▲교통 ▲교육 ▲한강 등이 모인 중심지라는 점이다.
압구정은 1990년대부터 대표적 패션ㆍ문화를 주도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로데오 상권의 시초라 볼 수 있는 ‘압구정 로데오’는 초기에 도로변에 많은 매장이 입점하면서 패션 중심지 역할을 했으며 지금도 현대백화점, 갤러리아백화점 등으로 압구정 패션의 랜드마크로 자리 잡고 있다.
이어 인접한 청담동 명품거리는 갤러리아 백화점에서 청담사거리까지 대로변에 형성돼 있고 다양한 명품 플래그십스토어와 편집매장(다양한 패션아이템을 모아놓은 상품매장)이 밀집해 많은 관광객이 찾는 관광명소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이곳은 한강변이 튀어나온 곳에 있고 한남대교, 동호대교, 성수대교 등 3개 한강교와 연결돼 있어 다른 강남 지역보다도 사대문 안 도심지역과 강북으로 이동이 편리하다. 더불어 여의도, 강남역 등 3대 CBD(중심 업무 지구)와 30분 안쪽으로 접근할 수 있는 만큼 생활권ㆍ업무 지역권 면에서 입지가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또한, 대중교통으로 지하철 3호선 압구정역과 수인분당선 압구정로데오역 사이에 있어 더블 역세권이며 버스 노선은 종로, 명동, 고속버스터미널, 코엑스, 이태원, 여의도, 신촌 등 서울의 다양한 곳으로 연결돼 있고 인천국제공항과 김포공항으로 가는 버스도 이용할 수 있다.
교육시설로는 신구초, 압구정초, 신구중, 압구정중, 압구정고, 현대고 등이 밀집해 강남 8학군으로 불리는 등 환경이 우수하다. 더불어 주변에 잠원한강공원과 도산근린공원이 가까워 운동ㆍ산책ㆍ휴식 등을 누릴 수 있고 도산안창호 기념관도 체험할 수 있다.
이러한 다양한 입지적 장점이 모인 압구정 일대는 향후 지상 최고 50층 규모의 공동주택 1만5000여 가구(향후 사업 진행 경과에 따라 바뀔 수 있음)를 갖춘 ‘미니 신도시’로 거듭난다는 구상이다.
흔들리는 압구정 재건축?… 압구정3구역, 신통기획 철회 가능성 ‘대두’
압구정한양7차도 단독 재건축 ‘검토’
전문가, 시-조합 양보ㆍ절충안 마련해야
다만 서울시가 추진하는 신통기획은 정비계획 수립까지 걸리는 기간(통상 5년 소요)이 2년으로 단축된 점이 최대 장점으로 적용되지만, 압구정 일대 재건축 단지들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흘러가는 모양새다.
앞서 재건축 설계자 공모 선정 과정에서 한 차례 서울시와 갈등을 빚었던 압구정3구역(압구정현대1~7ㆍ10ㆍ13ㆍ14차)은 신통기획 추진 여부를 두고 조합원 내부적으로 의견 충돌이 깊어지고 있다. 이에 신통기획 철회를 원하는 일부 주민들도 적지 않다는 후문이다.
반대 이유 중 가장 큰 요인은 과도한 공공기여로 인한 재건축 추진상 ‘재산권 침해 우려’인 것으로 알려졌다.
일반적으로 재건축은 임대 물량이 의무적으로 배정되지 않으나 신통기획으로 추진시 임대 물량 배정이 높아진다. 이어 소셜믹스 등 여러 가지 기부채납 수반이 주된 요인으로 분석됐다.
이러한 공공성 강화로 인한 시의 간섭이 지나치게 많다는 게 반대하는 일부 조합원들의 입장이다. 실제로 시는 지난 7월 31일부터 8월 18일까지 설계자 공모 과정 등을 포함해 조합 운영ㆍ행정 전반에 대한 점검을 시행했고 결과로 압구정3구역 재건축 조합(조합장 안중근)에게 설계자 선정 부적정 시정명령을 내리기도 했다.
이에 조합은 이달 16일 신통기획과 관련해 최근 논란이 됐던 사안들을 세부적으로 설명하는 공식 사업설명회를 개최했다. 이날 ▲신통기획 추진 연역 ▲사업 내용 ▲향후 계획 등을 조망하면서 이러한 설명 안에는 ‘신통기획 백지화 방안’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일각에서는 이들의 입장대로 압구정3구역이 신통기획을 탈퇴할 경우 지구단위계획부터 타 압구정 구역들과 동일한 내용으로 추진될지 미지수라는 의견이 제시됐다.
형평성 논란 등으로 기존 지구단위계획이 이어지지 못하면 절차적으로 별도의 재검토 및 재수립 과정이 필요한데 이 경우, 사업은 지구단위계획(안) 수립을 시작으로 열람공고 및 관련 부서 협의까지 이뤄져야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어서 구 도시건축공동위원회 자문과 그에 따른 열람공고 및 부서 간 협의, 구 자문기관 의견수렴 등을 거쳐야 지구단위계획이 입안된다. 이후 시 도시건축공동위원회 심의를 거쳐 지구단위계획이 결정되는데, 압구정ㆍ여의도ㆍ용산 등은 용역 발주ㆍ심의ㆍ의견수렴ㆍ결정 등의 과정에서만 20여 년이 소요된 바 있다.
또한, 지구단위계획과는 별도로 사업을 추진하기 위한 정비계획 수립과 구역 지정, 지구단위계획 변경에는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구체적으로 ‘정비계획 및 지구단위계획(변경)에 대한 주민제안→관련 부서 협의→주민공람→구의회 의견청취→시 결정요청→시 도시계획위원회 심의’까지 도달해야 정비계획이 결정되고 지구단위계획도 변경될 수 있어 신통기획 철회 계획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해당 조합은 향후 주민과 소통ㆍ의견을 수렴해 압구정 대표 단지 프리미엄ㆍ사업성ㆍ조합원들의 자부심 제고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뜻을 밝혔으나, 일부 주민들은 설명회 장소 앞에서 신통기획 전면 백지화를 주장하며 차량과 현수막을 동원한 시위를 진행하는 등 신통기획 갈등이 당분간 지속할 것으로 예고됐다.
이 밖에도 한양5ㆍ8차와 함께 6구역에 속한 한양7차 단지는 5차ㆍ8차 통합 재건축에서 분리해 단독 재건축에 나설 전망이다.
한양7차 재건축 조합은 지난 8월까지 열람 공고한 ‘압구정아파트지구 지구단위계획(안)’과 관련해 통합 재건축이 아닌 단독 재건축 추진 내용이 남긴 의견서를 제출한 바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곳이 압구정 단지 중 유일하게 조합 설립을 마쳤고 사업성 및 사업 추진 속도를 고려하면 통합보다는 단독으로 재건축을 추진하는 게 더 유리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고 입을 모았다. 시도 대지분할가능선에 대해 긍정적 추가 방안을 검토 중으로 한양7차의 분리 재건축 가능성은 커지고 있다.
압구정6구역 통합 재건축 논의가 더뎌지자 한양5차 소유주들 또한 재건축 진행 상황 대응 회의를 개최하는 등의 움직임을 보이면서 추가 분리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압구정 재건축에 대해 도시정비업계 전문가는 “압구정3구역 사례로 인해 신통기획은 주민이 아닌 서울시가 주체인 사업이란 인식이 점점 퍼지고 있다”라며 “그러나 주민 반발이 커지면 시에서도 섣불리 사업을 강제할 수 없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문제는 압구정은 상징성이 큰 지역인 데다 오세훈 시장의 역점인 ‘한강 르네상스’ 완성을 위해 필요한 핵심 입지가 갖춰진 곳이기 때문에 주민 반대만으로 사업을 원하는 방향으로 돌리기 힘들다”라며 “시-조합이 어느 정도 양보ㆍ절충점을 찾지 않으면 용적률을 올리고 층수를 높이는 등 규제 완화도 소용없다”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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