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유경제=김진원 기자] 2021년 전ㆍ현직 직원의 신도시 땅 투기 논란으로 문제를 일으켰던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이번에는 ‘철근 누락’ 아파트 사태로 존폐 논란에 휩싸인 모양새다. 안 그래도 부실시공 문제로 국내 건설업계에 대한 세간의 인식이 부정적인 상황에서 LH가 참여한 지하주차장 공사에서 기둥을 지탱하는 보강 철근이 빠진 사례가 속속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LH가 직접 발주한 인천 검단신도시에 이어 전국 20개 단지에서도 철근이 누락된 것으로 밝혀지며 사태가 일파만파로 커지고 있다. 특히 LH는 ‘철근 누락’ 단지의 설계ㆍ감리에 참여한 전관 업체와 최근 3년간 2335억 원에 이르는 초대형 수의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알려져 LH의 ‘전관 카르텔’이 전반에 만연해 있다는 비판과 함께 공공기관이 비리의 온상으로 전락한 현 작태를 더 이상 좌시할 수 없는 만큼 이번에야말로 정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에 본보는 일파만파로 커지고 있는 LH 비리 의혹 논란을 자세히 파헤쳐 보고자 한다.
LH 아파트 91곳 중 20곳 ‘철근 누락’… 5곳은 고의 누락 발표도
‘철근 누락’ 전관 업체들과 3년간 2000억 원대 ‘수의계약’
지난달(7월) 30일 국토교통부(장관 원희룡ㆍ이하 국토부)는 LH가 발주한 임대ㆍ분양 단지 중 ‘지하주차장 무량판 구조’를 적용한 91곳을 전수 조사한 결과, 15개 단지에서 철근이 제대로 시공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지난 4월 인천광역시 검단신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 사고의 주된 원흉으로 지목된 ‘철근 누락’이 LH가 발주한 아파트 15곳에서 또 다시 확인된 것이다. 무량판 구조 자체가 보 없이 기둥만으로 직접 지붕을 지탱하는 만큼 철근을 이용한 시공은 안전을 위해 무조건 진행돼야 함에도 철근이 ‘쏙’ 빠지면서 언제든 붕괴 가능성이 도사리고 있었다는 의미다.
더 충격적인 점은 15개 단지 중 10개 단지에서 설계 자체가 미흡해 철근이 어디에 필요한지, 몇 개나 사용돼야 하는지조차 정확한 계산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더 나아가 나머지 5개 단지에서는 시공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드러나면서 국민적 공분을 사고 있는 모양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LH가 지하주차장에 무량판 구조가 적용된 공공 아파트 단지의 전수조사 결과 발표 당시에 ‘철근 누락’ 아파트 단지 5곳을 ‘누락 정도가 경미하다’는 이유로 제외한 것으로 드러나 논란을 가중시켰다.
이런 이유 때문에 업계에서는 문제가 드러난 단지에 대한 보완공사와 정밀안전진단 등의 후속 조치와는 별도로 근본적으로 LH가 얼마나 엉망으로 일을 진행하는지 알려진 만큼 이에 대한 징계와 고발 등의 절차는 필수적이라고 입을 모은다.
문제는 또 있다. LH가 철근이 빠진 공공주택의 설계ㆍ감리를 담당한 전관 업체와 3년간 2300억 원이 넘는 수의계약을 맺은 사실이 새롭게 드러난 것이다.
지난 14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박정하 의원이 LH로부터 제출받은 수의계약 자료를 분석해보면 지난 3년간 LH가 16개 단지를 대상으로 설계ㆍ감리한 전관 업체 18곳과 맺은 수의계약 규모는 77건, 총 2335억 원에 달한다.
이들 중 LH 출신이 창립하고, 현 대표이사도 LH 출신인 한 건축사사무소는 3기 신도시 공동주택 설계용역 등 11건을 343억 원에 수주했고, ‘철근 누락’이 밝혀진 1개 단지를 설계하고 3개 단지 감리를 담당했다. 다른 건축사사무소는 LH 처장ㆍ부장급을 영입한 곳으로 고양창릉, 파주운정 등 신도시 아파트 단지 설계용역 6건을 총 275억 원에 수주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뿐만 아니다. 인천검단을 설계한 건축사사무소의 경우, LH는 물론 서울주택도시공사(SH)ㆍ조달청ㆍ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 출신의 전관을 채용했으며 지난 3년간 설계용역 건수만 6건에 이르고 총 수주액 269억 원 규모의 수의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확인됐다. 대형 규모의 중요 계약들이 공정한 경쟁이 아닌 전관 출신 업체와의 수의계약 방식임을 드러난 만큼 LH 내 자정 기능은 이미 ‘무용지물’이라는 비난이 쏟아지는 이유다. 윤석열 대통령이 LH 혁신과 건설 카르텔 혁파를 차질 없이 이행하라는 지시를 내린 이유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원희룡 장관 “LH, 전관 업체와 용역계약 절차 전면 중단해라”
LH, 임기 만료 앞둔 임원 사퇴… 사실상 ‘꼼수’ 비판
원희룡 장관 역시 지난 15일 LH를 향해 전관 업체와의 용역계약 절차를 전면 중단하라고 지시했다.
원 장관은 “국민의 비판을 받는 가운데 아무런 개선 조치 없이 관행대로 용역 관련 절차를 진행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LH는 전관이 근무하는 업체와의 용역계약 절차를 전면 중단하고, 국토부 역시 이권 카르텔 혁파 방안을 조속히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철근 누락 아파트 단지 명단을 공개 후 비난이 쏟아짐에도 반성 없이 보름 동안 설계 용역 5건, 감리 용역 1건에 대한 입찰 결과 6건 모두 LH 전관 업체가 따가자 국토부 장관이 ‘아파트 철근 누락’이 드러난 이후에도 변화 없이 전관 계약이 이어지고 있는 현 상황을 질타하며 조치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파문이 커지자 LH는 전관 관련 대책을 수립한 후 이에 대한 별도의 발표를 하겠다는 입장이다. 설계부터 시공에서 감리까지 공사가 진행되는 과정에 참가한 업체를 선정할 때 해당 업체 내 LH 출신 직원이 있는지 여부를 알리고, 허위 명단을 제출할 경우 계약 취소는 물론 향후 입찰에서도 불이익을 주겠다는 계획이다.
더불어 LH는 철근 누락 사태에 대한 책임을 이유로 임원 전원 사직서를 받았다. 하지만 사직서를 제출한 임원 대부분이 이미 임기가 완료됐거나 임기 만료를 앞두고 있어 사실상 여론 잠재우기를 위한 ‘꼼수’가 아니냐는 비판이 일고 있다.
이에 대해 업계 관계자는 “근본적으로 LH 비리가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것은 LH가 가진 막대한 권한과 내부 칸막이 구조 때문이다”라며 “부동산 정보에 누구보다 빠르고 쉽게 접근할 수 있고 용역 업체 선정 과정에서 막대한 힘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에 있어서다”라고 귀띔했다.
이어서 그는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던 조직의 상관들이 퇴직 후 연관 기업으로 이직하고 후배들과 서로 밀고 당겨주는 식으로 하나의 공고한 ‘카르텔’이 형성돼 있다”며 “정부와 국회는 더 이상 이들의 비리를 묵과하지 말고 재발을 막기 위해서라도 LH를 해체 수준으로 축소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경찰은 아파트 단지 ‘철근 누락’과 관련해 수사의뢰 12일 만인 지난 16일 LH 본사에 대한 압수수색에 나섰다.
광주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는 광주광역시 선운2지구 LH 발주 철근 누락 아파트 수사를 위해 경남 진주 LH 본사를 필두로 LH 광주ㆍ전남본부, 설계자, 구조안전진단 용역사 등 총 4곳에 수사관 16명을 보내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경찰은 철근 누락이 확인된 LH 발주 아파트단지 15곳을 지역별로 나눠 수사 중인 가운데 광주 이외에도 추후 전국의 다른 수사 대상 아파트에 대해서도 강제수사를 진행한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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